[주일설교, 2022.05.08, 김진영 담임목사] 언약궤의 귀환과 웃사의 죽음 : 하나님의 딜레마
1. 기본 정보
| 항목 | 내용 |
|---|---|
| 일자 | 2022년 5월 8일 (주일) |
| 설교자 | 김진영 담임목사 (서울중앙교회) |
| 설교 제목 | 언약궤의 귀환과 웃사의 죽음 : 하나님의 딜레마 |
| 성경 본문 | 사무엘하 6장 1-10절 |
| 함께 읽은 말씀 | 민수기 4:5-6 / 민수기 4:15 / 민수기 6:24-26 / 고린도후서 13:13 |
| 영상 | https://youtu.be/5lKYX3WL29w (설교 약 37분 + 기도) |
작성 근거: 유튜브 영상의 한국어 자동 자막 전체를 읽고 정리했습니다. 자동 자막은 고유명사와 성경 용어를 자주 틀리게 받아 적으므로(예: "은 학교·은 약계·어느 학교"→언약궤, "우사·목사·호사"→웃사, "5배 돔"→오벧에돔, "고압 자손·고학자 손"→고핫 자손, "해 달에 가족"→해달의 가죽, "헌 상"→헌상) 성경 본문에 맞추어 바로잡았습니다.
설교 앞부분에 언약궤를 설명하는 약 2분짜리 영어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그 구간의 자막은 영어 음성을 잘못 받아 적은 것이어서 내용을 정리하지 않았습니다.
2. 한눈에 보는 설교의 흐름
| 순서 | 내용 |
|---|---|
| ① 물음 | 웃사의 죽음을 보면 하나님은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이라기보다 너무 엄하고 힘든 하나님처럼 보인다. 정말 그런가? |
| ② 언약궤 | 언약궤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임재하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
| ③ 다윗의 결심 | 정치적으로도 중요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보잘것없던 자기에게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였다. 약 70년 방치된 언약궤를 모셔 오려 했다. |
| ④ 다윗의 최선 | 3만 명, 새 수레,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악기. 온 국민의 축제. 하나님 보시기에 그 마음과 열심은 좋았다. |
| ⑤ 하나님의 말씀 | 세 겹으로 덮어라, 보지 마라, 만지지 마라, 고핫 자손이 메어 옮겨라. 어기면 죽는다(민 4:5-6, 15). |
| ⑥ 다윗의 잘못 | 덮지 않고 구경거리로 삼았고, 메지 않고 수레에 실었고,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 책임자는 다윗이다. |
| ⑦ 웃사 | 소들이 뛰어 궤가 떨어지려 하자 붙잡았고, 하나님께서 치셨다. |
| ⑧ 하나님의 딜레마 | 급하면 만져도 괜찮다고 하시면, 하나님은 거짓말하는 하나님이 된다. 말씀하신 대로 하실 수밖에 없다. |
| ⑨ 다윗의 분노 | "하나님 너무하십니다." 언약궤를 오벧에돔의 집으로 보내 버린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께서 더 화나실 일이다. |
| ⑩ 교훈 |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말씀에 맞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입다의 서원). |
| ⑪ 오래 참으심 | "옆집 아줌마가 우리 엄마였으면" 하는 철없는 아이를 부모가 죽이지 않듯, 하나님은 다윗을 참으시고 회개의 기회를 주셨다. |
| ⑫ 적용 | 예배 순서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다. 봉헌(헌금·헌상)은 돈이 아니라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
| ⑬ 축복의 선언 | 자기를 드린 사람을 은혜로 받으시고 복을 선언하신다(민 6:24-26, 고후 13:13). |
| ⑭ 결론 | 하나님께서 받아 주신 사람으로 한 주간을 살아, 모든 삶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되게 하자. |
3. 결론 — 돈이 아니라 나를 받으시는 하나님, 받아 주신 사람으로 사는 한 주간
-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우고 하나님의 본심을 잘 깨닫자. "아, 언약궤는 이렇게 옮겨야 되는구나" 하고 다윗이 회개하고 말씀대로 순종했듯이, 우리도 예배드릴 때 예배 순서 하나하나를 그렇게 대하자.
- 오늘 같은 경우 봉헌(헌금·헌상)을 드릴 때 이렇게 생각하자. "아, 이것이 나를 드리는 것이구나. 하나님께서 돈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받아 주시는구나."
- "나를 받아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받아 주신 사람으로, 그 은혜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한 주간 살아가야 되겠구나."
- 그래서 우리의 삶이 주일뿐만 아니라 모든 삶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되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4. 함께 드린 기도 제목
설교 끝에 주신 기도 제목은 하나였다.
- 말씀에 합당한 삶 —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깨닫게 해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사람으로 나를 돌아보며 회개하며, 말씀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은혜를 주십시오."
마무리 기도(회중 기도 직후 일부 구간은 자막이 깨져 뜻이 통하는 범위만 옮김): 하나님을 향한 선한 뜻과 열심이 있어도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하는 모습이 우리에게 있음을 돌아보고, 하나님을 올바르게 알고 올바르게 예배하게 해 주시기를 구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말씀으로 가르쳐 주셔서, 하나님이 한없이 좋으시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돌아가게 해 주시기를 구했다. 참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감사하면서, 그렇게 좋으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시기에 내 소견에 좋은 대로, 내 마음대로 예배하거나 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오늘 말씀으로 다시 기억한다고 고백했다. 하나님을 너무너무 좋아하고 즐거워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자리, 경외함 가운데 기쁨이 있고 기쁨 가운데 두려움이 있는 은혜의 자리에 항상 서 있도록 지켜 주시기를 구했다. 예배의 자리에 불러 주신 것을 감사하고, 감사함과 두려움과 조심하면서 즐거워하는 예배의 은혜를 깨달아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로 살게 해 주시기를, 한 주간 어느 곳에 있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받으신 사람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로, 항상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되게 해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다.
5. 성경 본문 (사무엘하 6:1-10) 줄거리
본문은 개역개정 성경의 내용을 풀어서 요약한 것입니다. 정확한 문장은 성경을 직접 펴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구절 | 내용 |
|---|---|
| 6:1 |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사람 3만 명을 다시 모았다. |
| 6:2 | 다윗이 일어나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했다.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다. |
| 6:3 |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왔다.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몰았다. |
| 6:4 | 하나님의 궤를 싣고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갔다. |
| 6:5 |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 비파, 소고, 양금,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했다. |
| 6:6 | 그들이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다. |
| 6:7 |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었다. |
| 6:8 |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셨으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곳을 베레스웃사라 불렀고,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른다. |
| 6:9 | 다윗이 그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했다. |
| 6:10 |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 하지 않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가게 했다. |
6. 설교 내용 정리
6-1. 도입 — 육신의 부모님 경험과 하나님에 대한 생각
목사님은 육신의 부모님 이야기로 말씀을 여셨다.
- 육신의 부모님에 대해 좋은 경험이 있는 분도 있지만, 좋지 못한 경험을 가진 분들도 있을 것이다.
-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육신의 부모님을 통해 경험했던 것과 많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
- 부모님을 통해 받은 좋은 기억으로 성경의 하나님을 더 잘 알아 가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성경을 통해 알게 된 하나님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다시 고칠 수도 있다.
그런데 오늘 사건은 하나님이 너무 엄하신 분으로 보인다
오늘 사건을 얼핏 보면 "하나님은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이다"라기보다 "하나님은 너무 엄하시고 힘든 하나님이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하나님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 수레에 싣고 가던 언약궤가 소들이 뛰는 바람에 넘어지게 되었다.
- 옆에 있던 웃사가 언약궤가 수레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땅에 떨어져 손상을 입거나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붙잡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일이다.
- 그런 웃사의 행동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치셨다. 웃사가 죽었다.
- 다윗이 보기에 하나님이 너무 심하시다. 너무 엄격하고 무섭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려던 언약궤를 포기하고 오벧에돔의 집으로 옮겼다.
오늘 사건만 보면 하나님은 자기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신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잘못한 웃사를 징계하시는 너무나 엄격한 하나님, 가까이하기에도 "사랑한다"고 말씀드리기에도 좀 힘든 하나님으로 묘사되어 있다.
설교의 물음 — 하나님의 딜레마
- 이 사건에는 하나님께 딜레마가 있다. 하나님께서 이 사건 가운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시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실 수밖에 없었는지, 정말로 하나님은 두렵고 무서운 하나님이신지, 아니면 오래 참으시고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신지를 말씀을 통해 다시 기억하자고 하셨다.
6-2. 언약궤는 무엇인가
이 모든 사건은 언약궤로부터 시작된다. 성경공부를 통해 언약궤는 이미 잘 알고 있을 줄 믿는다고 하시면서, 2분 정도 되는 영상을 함께 보았다. 소리는 영어지만 전혀 안 들려도 상관없고 그림만으로 충분히 설명이 된다고 하셨다. 크지 않은 언약궤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무엇을 나타내는지를 보여 주는 영상이었다.
영상을 본 뒤 목사님의 설명:
- 정확하게 저렇게 생겼다고 확정할 수는 없지만, 보통 저렇게 생겼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 언약궤가 어디로 사라졌는가는 조금 미스터리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했을 때 분명히 언약궤를 넣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멸망시켰을 때 많은 것을 가져갔지만 언약궤를 가져갔다는 기록은 없다. 솔로몬 성전 이후로는 언약궤가 나오는 것이 없는 것을 보면 솔로몬 시대에 언약궤가 옮겨지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하기도 한다. 어쨌든 언약궤의 행방은 알 수 없다.
- 중요한 것은 언약궤가 무엇을 상징하는가이다.
- 성전 안 지성소 안에 있는 유일한 것이 언약궤다.
-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언약궤 위 그룹들 사이에서 말씀하시겠다고 하셨다.
- 그래서 언약궤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신다" 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6-3. 다윗은 왜 언약궤를 옮기려 했는가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 성으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일이었다
- 왕이 되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일이다.
- 북쪽과 남쪽으로 분열되어 있던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기 위해 새로운 수도를 정해야 했고, 예루살렘을 정복해서 수도로 정했다.
- 예루살렘이 정말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의 수도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언약궤를 모셔 오는 것이다.
- 임재하시는 하나님께서 언약궤와 함께하시는데, 그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 왔을 때 예루살렘은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을 믿음 안에서 하나로 엮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더 중요한 이유 — 은혜에 대한 감사
- 다윗이 언약궤를 가져오려 한 더 중요한 이유는, 보잘것없었던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기 위해서다.
- 형제들 가운데 그렇게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자기 삶을 돌아볼 때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정말로 감사하고 있다.
- 왕으로 삼아 주신 하나님, 예루살렘을 주신 하나님. 이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하나님 중심의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 언약궤를 가져오기로 결심한 것이다.
- 하나님 보시기에 정말로 기특하다.
약 70년 동안 방치된 언약궤
- 이 언약궤는 그동안 70년 정도 방치되어 있었다.
- 사울 왕이 등극하기 전, 엘리 제사장 시대 때 전쟁에 메고 갔다가 블레셋에게 빼앗겼다.
- 빼앗겨서 6개월 동안 블레셋의 도시를 옮겨 다니다가, 블레셋 사람들이 감당하지 못해 언약궤를 수레에 실어 돌려보냈다.
- 벧세메스에 왔는데, 벧세메스 사람들이 언약궤가 돌아온 것을 보고 기뻐하고 궁금해서 시은소(속죄소)라고 하는 언약궤 뚜껑을 열고 들여다보다가 70명이 그 자리에서 죽는 사건이 있었다.
- 그 이후로는 언약궤를 아무도 돌보지 않았다. 아비나답의 집에 그냥 모셔 놓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 사울이 왕이 되어 40년간 다스릴 때에도 하나님의 언약궤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 하나님이 계시지만 하나님은 잊히고, 언약궤는 잊혔다. 그런 가운데 다윗이 왕이 되어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모셔 오는 것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다윗의 이 마음, 은혜를 감사하고 언약궤를 이스라엘의 중심에 두려는 이 마음을 보시고 기뻐하셨을 것이다.
6-4. 다윗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 본문은 언약궤를 모셔 오는 데 3만 명을 동원했다고 말한다. 온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 중요한 사람들, 젊은 사람들을 다 뽑았다. 전쟁에 나가는 것도 아닌데 마치 큰 전쟁에 나가는 것처럼, 큰 축제를 준비해서 3만 명을 동원했다.
- 언약궤를 옮기기 위해 새로운 수레를 준비했다.
- 본문에 기록된 대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악기, 아마 큰 오케스트라든 찬양대든 동원할 수 있는 악기를 다 동원했다.
-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그 일을 정말로 온 국민이 즐거워하는 축제의 자리로 만들어 진행했다.
하나님 보시기에 다윗의 마음과 열심,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은 참 좋으셨을 것이다. 70년 동안 방치해 놓았다가 이제 가지고 오니 분명히 하나님 마음에 좋으셨을 것이다.
6-5. 그러나 — 언약궤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
그렇지만 성경을 조금 아는 사람, 언약궤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을 아는 사람이 이 장면을 보면 굉장히 불안하다. 문제가 되는 일을 다윗이 많이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언약궤에 대해 하나님께서 민수기에서 엄중하게 말씀하신 내용이 있다.
(회중과 함께 민수기 4:5-6 낭독)
"진영이 전진할 때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들어가서 칸 막는 휘장을 걷어 증거궤를 덮고 그 위를 해달의 가죽으로 덮고 그 위에 순청색 보자기를 덮은 후에 그 채를 꿰고" (민 4:5-6)
지성소 안에 있는 언약궤를 옮길 때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세 번 덮도록 되어 있다.
| 순서 | 덮는 것 |
|---|---|
| 첫째 | 성소와 지성소를 막고 있는 휘장으로 언약궤를 덮어라. |
| 둘째 | 그 위에 해달의 가죽으로 또 덮어라. |
| 셋째 | 그 위에 순청색 보자기로 또 덮어라. |
언약궤를 보지 못하도록 덮으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영상에서 본 대로 언약궤에는 고리가 있다. 막대기(채)를 넣을 수 있는 고리가 항상 있어서, 그 고리에 채를 꿰어서 메도록 말씀하셨다.
(회중과 함께 민수기 4:15 낭독)
"진영을 떠날 때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는 일을 마치거든 고핫 자손들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라 그들이 죽으리라 회막 물건 중에서 이것들은 고핫 자손이 멜 것이며" (민 4:15)
목사님은 이 구절도 자세히 보라고 하셨다.
- 언약궤를 덮는 일은 누가 하는가? 제사장들이 한다.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안에 있는 성물을 다 쌀 수 있다.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볼 수 있고 쌀 수 있다.
- 그렇지만 옮기는 것은 레위 지파 가운데 고핫 자손만 들어와서 할 수 있다.
- 옮기는 고핫 자손에게 명령하신 것이 있다. "언약궤를 쌀 때에 들어와서 보지 마라. 그 부분은 너희가 할 일이 아니다. 너희가 보면 죽을 것이다. 그것은 제사장들이 해라."
-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만지지도 마라. 언약궤에 손대지 마라.
- 제사장들이 세 겹으로 다 싸고 난 다음에 너희가 들어와서 고리에 채를 끼워 메고 가는 일을 고핫 자손들이 해라.
정리하면, 언약궤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보지 마라, 만지지도 마라, 옮길 때에는 메고 옮겨라" 이다. 그리고 엄중한 경고가 있다. 함부로 보거나 만지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마라, 먹으면 정말로 죽는다"고 경고하셨듯이 경고하신 것이다.
- 이 말씀을 어기고 뚜껑을 열어 쳐다보다가 벧세메스에서 많은 사람이 죽은 일이 있었다.
-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서 사람들이 그것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6-6. 책임자는 누구인가 — 다윗이 한 일들
목사님은 물으셨다. "이 언약궤를 옮기는 일의 책임자가 누구입니까?" 다윗이다.
- 웃사가 언약궤를 건드린 것은 맞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다 잘했는데 웃사만 잘못했는가? 그렇지 않다.
- 이 모든 일을 계획한 사람은 다윗이다.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야 되겠다고 결심한 사람도, 옮기는 방식을 결정한 사람도 다윗이다.
- 그런데 다윗이 행한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무지한 가운데 다 하고 있는 것이다.
| 하나님의 말씀 | 다윗이 한 일 |
|---|---|
| 세 겹으로 덮어라. 보지 마라, 볼 필요 없다, 덮어서 옮겨라. | 그 말씀을 알지 못하고 덮지 않은 채 옮겼다. 모든 사람이 다 볼 수 있도록 구경거리로 삼았다. |
| 고핫 자손이 메고 옮겨라. | 그 말씀에 대한 이해도 없고 하나님께 물어보지도 않았다. 큰 축제를 준비하는 일에 마음이 가 있어서, 새 수레를 준비해 수레 위에 전시해서 옮겼다. 메라고 하셨는데 메지 않았다. |
그렇게 하다 보니 이 사건 자체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 길이 아스팔트처럼 평탄한 것도 아니다. 타작마당에 왔을 때 소들이 갑자기 거칠게 움직였다.
- 그러니 수레가 흔들린다. 수레에 올라가 있는 언약궤가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 두 아들 가운데 한 사람은 앞에 서고 한 사람은 옆에 섰는데, 마침 웃사가 그 옆에 서 있었다.
6-7. 웃사의 자리, 그리고 하나님의 자리
"여러분이 웃사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평생 동안 집에서 모셔 왔던 하나님의 언약궤를 옮기는데, 갑자기 소들이 날뛰어서 언약궤가 떨어지고 땅에서 파손될 위험이 있다.
- 옆에 서 있다면 떨어지도록 그냥 놔두겠는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겠는가? 붙잡는다. 당연히 붙잡을 수밖에 없다.
- 그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치신 것이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입장에 계신다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하나님께서는 "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마라"고 말씀하셨다.
- 그런데 "급한 상황이 되었을 때는 만져도 괜찮다. 떨어지려 하는데 붙잡아야 하지 않느냐"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손대고 만져도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전혀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 되시는가?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어도 죽지 않는다." 그것은 사탄의 말, 마귀의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따 먹었다. 그런데 죽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거짓말하시는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
- 하나님의 입장이 정말 쉽지 않다.
6-8. 다윗의 분노 — "하나님 너무하십니다"
웃사가 죽었다. 웃사가 죽은 것을 두고 화를 낸 사람은 다윗이다.
- 다윗이 화를 낸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님이 너무 심하시다."
- 누가 봐도, 웃사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았는데 그런 웃사에게 진노하셔서 죽이시는 것은 "하나님, 정말 너무하십니다"라는 것이다.
- 그래서 다윗이 결심한다. "이렇게 까다롭고, 이렇게 무자비하시고, 이렇게 징계를 잘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내 성에 모시겠느냐. 나는 자신 없다. 이렇게 힘든 하나님이시라면 딴 집에 그냥 모시는 것이 좋겠다."
- 그래서 오벧에돔의 집으로 언약궤를 옮겨 버린다.
하나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
-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따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듯이, 언약궤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나님이고 거짓말하지 않는다. 내 말을 지켜야 한다."
- 다윗의 의도는 좋다. 그러나 다윗이 한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 무시하고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일을 본의 아니게 벌인 것이다.
- 모든 사람이 다 구경할 수 있도록 언약궤를 구경거리로 만들어 놓았다. 수레에 싣고 가면서 모든 사람이 다 쳐다본다.
- 메고 가라고 하셨는데 그 생각은 없다. "블레셋 사람도 수레로 보냈을 때 문제없지 않았느냐. 우리도 수레를 준비해서 수레에 싣고 가자."
- 모든 사람이 구경하고 쳐다보면서, 자기들이 기뻐서 일을 진행하고 있다.
- 사실은 누가 더 화가 나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오히려 더 화가 나실 사건이다.
-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고, 웃사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손을 대었지만, 하나님께서는 하신 말씀대로 웃사를 징계하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6-9. 좋은 의도와 하나님의 말씀 — 입다의 서원
목사님은 여기서 회중의 신앙생활로 넘어오셨다.
-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어도, 신앙생활을 할 때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지, 하나님이 좋아하실 거야" 하고 내가 생각하기에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
- 그런 일은 교회가 영적으로 어리고 타락했을 때 벌어지는 일이다.
- 하나님의 말씀에 맞도록 신앙생활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계속 배우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원하시니 내가 이렇게 해야 되겠구나" 하는 것이 올바른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다.
입다의 예
-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정말로 감동받으시고 좋아하실 거야. 하나님, 저에게 승리를 주시면 제 딸을 산 채로 제사로 드리겠습니다." 그것이 입다의 서원이다.
- 입다가 그 서원대로 자기 딸을 죽여서 제사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입다를 기뻐하셨겠는가? 자기 딸을 죽여 제물로 바치는 것을 보시고 "잘했다, 너의 열심이 대단하다" 칭찬하셨겠는가?
- 정말로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무너지고 답답하신 것이다.
- 하나님께서는 인신 제사를 금하셨다. 인신 제사의 풍습은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이 아니라 우상을 섬기는 방식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는다.
다윗의 마음이 가 있던 곳
-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선하고 좋은 마음을 아신다.
- 동시에 다윗은 이 중요한 일에 하나님의 뜻을 전혀 구하지 않았다. "이것을 참 중요한 이벤트로 만들어서 모든 백성을 하나로 모으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중심지로 삼고,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축제로 만들어 보자." 다윗의 마음이 거기에 가 있었다.
- 그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웃사를 통해 경고하셨을 때, 다윗은 아무것도 모르고 하나님을 오해하면서 "이런 하나님은 너무 힘들다"고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6-10.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 "옆집 아줌마가 우리 엄마였으면"
하나님께서 많이 참으시는 것이다.
- 어린아이들이 가장 철없이 하는 소리가 있다. "옆집 아줌마가 우리 어머니였으면 좋겠다. 옆집 아줌마는 나를 더 사랑하는 것 같고, 옆집 아이들은 나보다 더 좋은 옷을 입는 것 같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왜 나한테 좋은 옷도 안 사 주고 왜 나한테 잘 안 해 주나. 차라리 옆집 아저씨가 우리 아버지가 됐으면 좋겠다."
- 그런 철없는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부모가 아이를 죽이면 되겠는가? 그러면 살아남을 아이가 없을 것이다.
-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을 보시고 오래 참으신 것이다. 그의 부족함과 어리석음과 무지함을 아시고,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향해 언약궤를 옮기고자 하는 열심도 아시고, 하나님께서 참 곤란한 가운데 이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회개의 기회를 주셨다
-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몇 달 뒤 언약궤를 다시 옮겨 오는 다윗의 모습을 보면 이렇게 고백하는 모습이다. "아, 제가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을 오해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잘못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을 내 소견에 좋을 대로 한 것을 회개합니다."
- 그 은혜,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을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다.
성경의 사건들을 읽을 때
- 믿음으로 신앙생활할 때 성경에 나타나 있는 여러 사건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을까? 정말로 하나님은 우리를 괴롭게 하고 엄하기만 하신 분일까, 아니면 자기의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시는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이신가?"를 물어야 한다.
- 말씀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하신지를 잘 배워 가고 깨달아 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
- 하나님을 올바르게 예배하고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다.
-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 하나님을, 예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알아야 한다. 알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이 계명에 따라 내가 이렇게 해야 되겠구나" 하고 회개하고 말씀에 따라 나를 바꾸어 갈 때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게 된다.
- 이 점에서 성령님께서 각 사람에게 여러 가지로 깨닫게 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6-11. 적용 — 봉헌(헌금·헌상)은 왜 주일 예배에만 있는가
목사님은 우리가 매주 드리는 예배에 관해 한 가지를 말씀하겠다고 하셨다. 예배 순서 가운데 봉헌 순서가 있다. 다른 교회에서는 헌금이라고도 하고 헌상이라고도 한다. 헌금이라고 생각해 보자.
- 주일 예배 때 왜 헌금을 드리는가? 주일 예배 때 헌금을 드리는 분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안 드리는 분도 있다.
- 헌금 순서가 예배마다 다 있는가? 수요 기도회 때, 금요 기도회 때, 특별새벽기도회 때, 집회 때를 기억해 보면 우리 교회는 헌금하지 않는다. 집회에서는 말씀을 듣지 헌금하지 않는다. 수요 기도회, 금요 기도회 때 나와서 기도회에 참석하지만 봉헌을 하지는 않는다.
- 그러면 주일 예배는 참 중요한 예배인데, 그 예배를 드릴 때 왜 봉헌을 하는가? 왜 헌금을 드리는가?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대답
- 목사님과 같이 지냈던 어떤 목사님의 아들이 있었다. 그분은 지금은 목사님이지만 그때는 집사님이었다.
- 그 집사님이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아들에게 집에서 가정 예배를 드리며 성경을 가르치다가 이 질문을 했다. 목사님도 그 자리에 같이 있었다. "주일 예배 때 너 왜 헌금을 하냐?"
-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이렇게 대답했다. "아버지, 헌금함에 내가 들어갈 수 없으니까 나를 대신해서 헌금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금은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헌금이 아닌 것, 헌금인 것
- 주일 예배 순서에 헌금이 있다. 봉헌이 있다. 헌상이 있다. 그것은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순서다.
- 하나님께서 용돈이 필요하셔서 용돈을 드리는 것이 아니다.
-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있어서, 하나님께 더 큰 복을 받으려고 헌금을 드리는 것도 아니다.
- 봉헌은 말 그대로 '오퍼링(offering)',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봉헌에 담긴 기도 — "하나님, 저를 받아 주십시오"
- 봉헌에는 기도가 있다. "하나님, 저를 받아 주십시오. 제가 하나님께 저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 그러면 하나님께서 무조건 받으시는가? 아니다. 내가 가진 죄와 연약함과 부족함을 볼 때,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는 내가 그렇게 깨끗하고 거룩하지 않다.
-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를 믿고 감사하면서 이렇게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 저에게 주신 모든 구원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제가 오늘도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릴 수 있는 자리에 불러 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제가 이번 일주일간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순종하면서 살겠습니다. 그렇게 살아가기 원하는 저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 저를 받아 주십시오."
- 그렇게 봉헌할 때에 그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나를 받아 주시는 것이다.
- 헌금을 드릴 때, 봉헌할 때는 "하나님께 저를 드리오니 받아 주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써 주십시오"라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6-12. 자기를 드린 사람에게 주시는 축복의 선언
그렇게 하나님께 우리를 드릴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은혜로 받아 주시고 선언을 하신다. 축복을 선언하신다. 하나님께 봉헌하고 믿음으로 살겠다고 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선언이 있고, 매주 들어서 알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복의 선언이다"라고 생각하면서 큰 소리로 같이 읽자고 하셨다.
(회중과 함께 민수기 6:24-26 낭독)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민 6:24-26)
(회중과 함께 고린도후서 13:13 낭독)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고후 13:13)
- 예배의 순서에는 의미가 다 있다. 언약궤를 이렇게 옮기라고 하셨듯이, 예배 순서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 헌상, 헌금, 봉헌은 그 마음으로 나를 드리는 것이다.
- 그래서 하나님께 진심으로 헌금을 드린 사람은 일주일간 생활할 때에 직장에 있든지 가정에 있든지 어디에 있든지 "내가 하나님께 나를 드렸다" 는 것을 의식하면서 살아간다. 그것이 예배드리는 사람이다.
-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와 복을 약속하시고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 그 마음을 가지고 예배 때마다 봉헌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배드리는 나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약속을 마음에 새기고, 어디에 있든지, 어려움이 있든지 형통하든지 "하나님께서 저를 축복하시고 저와 함께하시고 은혜 베푸신다고 하신 것을 믿습니다. 지금 저에게 은혜를 주십시오" 하면서 그 하나님을 경험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6-13. 헌금에 관한 구체적인 권면
주일 헌금을 꼭 기억하라
- 주일 헌금을 안 하는 교인들이 더러 있는 것으로 안다. "십일조도 드렸고 감사 헌금도 드렸고 다른 헌금도 다 드렸으니까 안 하겠다"는 것이다.
- 그렇게 하기보다는 매 주일 이 헌금의 순서가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임을 기억해서 주일 헌금을 꼭 하기를 바란다.
얼마를 해야 하는가
- "나를 드린다"는 마음으로 하면 된다고 두 번 거듭 말씀하셨다.
-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 참 어려운 질문인데, "나를 하나님께 드립니다"라는 마음을 담을 수 있도록 하면 된다.
- 액수를 보는 것이 아니다. 헌금하는 여러분의 마음이 담기도록 하나님께 여러분을 드리면 된다.
한국 교회의 좋은 전통 — 새 돈, 다리미로 다린 돈
- 한국 교회에 참 좋은 전통이 있다. 어릴 때 주일이면 부모님께 헌금을 받았다. 그때 부모님은 가능한 한 새 돈을 주셨다.
- 자녀가 영아부든 유치부든 초등학생이든 중고등학생이든, 부모로서 자녀에게 헌금을 줄 때 깨끗하고 준비된 헌금을 할 수 있도록 어머니로서 아버지로서 가르쳐 달라고 당부하셨다.
- "본 적은 없지만 들은 적은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깨끗한 돈이 없었기 때문에, 헌금의 정신을 알았던 부모님들이 실제로 다리미로 돈을 깨끗하게 다려서 헌금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 헌금이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 자녀에게 헌금을 가르칠 때 이렇게 가르치라고 하셨다. "헌금은 하나님께 용돈 드리는 것이 아니다. 감사하다고 드리는 것이 아니라 너를 드리는 것이다, 우리를 드리는 것이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
- 예수님의 말씀이 있다. 정말로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드렸을 때, 예수님께서는 헌금의 정신을 알고 자기 형편 가운데 최선을 다해 드리는 그 과부를 보시고, 헌금의 정신에 따라 가장 풍성하게 하나님께 자기를 드렸다고 말씀하셨다.
- 그 말씀을 꼭 기억하면서, 생활 가운데 하나하나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맞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헌금을 드리며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7. 참고자료
설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 설교에서 직접 말씀하신 내용이 아닌 부분은 성경 본문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성경 연구 자료에 근거했습니다. 연대는 학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어 "약"으로 표기했습니다.
7-1. 역사 배경
언약궤가 걸어온 길
| 시기 | 사건 | 성경 |
|---|---|---|
| 광야 시대 |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지시대로 언약궤를 만듦. 옮기는 규정을 주심. | 출 25:10-22, 민 4장 |
| 사사 시대 말 | 실로의 성막에 있던 궤를 전쟁터(에벤에셀·아벡)로 메고 나갔다가 블레셋에게 빼앗김. 엘리 제사장과 두 아들이 죽음. | 삼상 4장 |
| 블레셋 땅 | 궤가 아스돗, 가드, 에그론으로 옮겨질 때마다 재앙이 일어남. | 삼상 5장 |
| 귀환 | 블레셋 사람들이 새 수레에 궤를 싣고 젖 나는 소 두 마리에 메워 돌려보냄. 벧세메스 사람들이 궤를 들여다보다가 죽임을 당함. | 삼상 6장 |
| 방치 | 기럇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으로 옮겨져 오래 머묾. | 삼상 7:1-2 |
| 다윗의 첫 시도 | 새 수레에 싣고 오다가 웃사가 죽음. 궤는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 머묾. | 삼하 6:1-11, 대상 13장 |
| 다윗의 둘째 시도 | 레위 사람들이 채로 어깨에 메어 다윗 성으로 모셔 옴. | 삼하 6:12-19, 대상 15장 |
| 솔로몬 | 성전 지성소에 안치함. | 왕상 8:1-11 |
- 설교에서 "몇 달 뒤 다윗이 회개하고 다시 옮겨 왔다"고 하신 내용은 역대상 15장에 자세하다. 다윗은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다"고 선언하고(대상 15:2), 첫 번째 실패의 이유를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고 스스로 밝혔다(대상 15:13). 그 뒤 레위 자손이 모세가 명령한 대로 채에 꿰어 어깨에 메었다(대상 15:15).
- 설교에서 "블레셋 사람도 수레로 보냈을 때 문제없지 않았느냐"고 하신 것은 사무엘상 6장의 일이다. 율법을 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들이 쓴 방법을,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이 따라 한 셈이다.
- 언약궤의 행방: 설교에서 말씀하신 대로 주전 약 586년 바벨론이 성전에서 가져간 물건 목록(왕하 25:13-17)에 언약궤는 나오지 않는다. 성경에서 궤가 마지막으로 언급되는 사건은 요시야 왕 때이며(대하 35:3), 그 뒤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이 있을 뿐 확인된 것이 없다.
설교에서 언급된 다른 사건
| 사건 | 성경 |
|---|---|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와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는 경고, 뱀의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 창 2:16-17, 3:4 |
| 입다의 서원 | 삿 11:30-40 |
| 인신 제사를 금하신 말씀 | 레 18:21, 신 12:31 |
|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 | 요 14:21 |
|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 막 12:41-44, 눅 21:1-4 |
7-2. 지리
| 지명 | 설명 |
|---|---|
| 바알레유다(기럇여아림) | 본문 2절의 출발지.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십수 km 떨어진 산지 마을로, '바알라'라고도 불렸다(수 15:9). 아비나답의 집이 이곳 산(언덕)에 있었다. |
| 벧세메스 | 유다 서쪽 낮은 구릉 지대의 성읍. 블레셋 땅과 맞닿은 경계에 있어 돌아오는 궤가 처음 닿은 곳이다. |
| 블레셋의 도시들 | 지중해 연안 평야의 다섯 도시(아스돗, 가사, 아스글론, 가드, 에그론). 궤는 이 가운데 아스돗, 가드, 에그론을 거쳤다. |
| 실로 | 사사 시대에 성막과 궤가 있던 에브라임 산지의 성읍. |
| 나곤의 타작마당 | 웃사가 죽은 곳. 역대상 13:9에는 '기돈의 타작마당'으로 나온다.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사건 뒤 '베레스웃사'(웃사를 치심)라는 이름이 붙었다. |
| 다윗 성(예루살렘) | 다윗이 여부스 사람에게서 빼앗아 수도로 삼은 시온 산성(삼하 5:6-9). 유다와 북쪽 지파들의 경계에 있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자리였다. 설교에서 "나뉘어 있던 백성의 마음을 묶을 새 수도"라고 하신 배경이다. |
7-3. 인물
| 인물 | 설명 |
|---|---|
| 다윗 | 이새의 여덟 아들 가운데 막내로 양을 치던 사람(삼상 16:11).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으로 7년 6개월, 그 뒤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예루살렘에서 다스렸다(삼하 5:4-5). |
| 웃사와 아효 | 아비나답의 아들들. 궤가 오랫동안 자기 집에 있었으므로 궤 곁에서 자란 사람들이다. 설교의 "평생 집에서 모셔 왔던 언약궤"가 이 뜻이다. |
| 아비나답 | 기럇여아림 사람. 그의 집에 궤를 두고 아들 엘리아살을 구별하여 궤를 지키게 했다(삼상 7:1). |
| 오벧에돔 | '가드 사람'으로 불린다. 궤가 그의 집에 석 달 있는 동안 여호와께서 그와 온 집에 복을 주셨다(삼하 6:11). 이 소식이 다윗이 다시 궤를 모셔 오는 계기가 되었다(삼하 6:12). |
| 엘리 | 실로의 제사장. 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죽었다(삼상 4:18). |
| 사울 | 이스라엘의 첫 왕. 통치 기간 40년은 사도행전 13:21에 나온다. 다윗은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고 말했다(대상 13:3). |
| 고핫 자손 | 레위의 세 아들(게르손, 고핫, 므라리) 가운데 고핫의 후손. 성막의 가장 거룩한 기구들을 어깨에 메어 옮기는 일을 맡았다. 수레는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에게만 주어졌고 고핫 자손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민 7:6-9). |
| 입다 | 길르앗 출신의 사사. 암몬과 싸우러 나가며 한 서원 때문에 외동딸을 잃게 되었다. 서원이 실제로 어떻게 이행되었는지는 해석이 갈린다(8장 참조). |
7-4. 문화
언약궤의 모양과 운반법
- 조각목(아카시아 나무)으로 짜고 안팎을 금으로 입힌 상자다. 길이 2규빗 반, 너비와 높이 각 1규빗 반으로(출 25:10), 1규빗을 약 45cm로 보면 길이 약 110cm, 너비와 높이 약 70cm다. 설교에서 "크지 않은 언약궤"라고 하신 대로다.
- 네 발에 금 고리가 달려 있고, 거기에 금을 입힌 채(막대기)를 꿰어 두되 빼내지 못하게 하셨다(출 25:12-15).
- 뚜껑은 순금으로 만든 속죄소(시은좌) 이며 그 양 끝에 날개를 편 두 그룹(천사 형상)이 마주 보고 있다. 하나님은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두 그룹 사이에서 네게 이르리라"고 하셨다(출 25:22).
- 안에는 십계명 두 돌판이 들어 있었다(왕상 8:9). 히브리서 9:4는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도 함께 든다.
- 고핫 자손에게는 "성물을 잠시라도 들어가서 보지 말라 그들이 죽으리라"는 말씀도 주어졌다(민 4:20). 설교의 "보지 마라"가 이 구절이다.
세 겹의 덮개
지성소를 가리던 휘장, 해달의 가죽, 순청색 보자기다(민 4:5-6). '해달의 가죽'으로 옮겨진 낱말은 어떤 짐승의 가죽인지 번역마다 다르다(돌고래, 오소리 등). 물에 강한 질긴 가죽이라는 점은 공통이다.
새 수레와 타작마당
- 새 수레는 한 번도 다른 일에 쓰지 않은 것을 바친다는 정성의 표시였다. 블레셋 사람들도 그렇게 했다(삼상 6:7).
- 타작마당은 곡식을 떨기 위해 평평하게 다져 놓은 바위나 땅이다. 본문은 소들이 "뛰므로"라고 적는데, 이 낱말은 '비틀거렸다'로도 옮겨진다.
봉헌과 축도
- 봉헌(奉獻)은 받들어 바친다는 뜻이고, 헌상(獻上)은 위로 올려 드린다는 뜻이다. 둘 다 예배 중 헌금 순서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쓰인다.
- 설교에서 "축복의 선언"이라고 하신 것은 예배 끝의 축도(강복 선언) 다. 민수기 6:24-26은 제사장이 백성을 축복하던 말이어서 '아론의 축복'이라 불리고, 고린도후서 13:13은 사도 바울이 편지를 맺으며 쓴 축복으로 성부·성자·성령이 함께 나온다.
- 렙돈은 예수님 시대에 쓰이던 가장 작은 단위의 구리 동전이다. 두 렙돈은 로마 돈 한 고드란트에 해당한다(막 12:42).
7-5. 신학 용어
| 용어 | 풀이 |
|---|---|
| 언약궤(言約櫃) |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의 돌판을 넣어 둔 상자. 증거궤, 법궤, 하나님의 궤, 여호와의 궤라고도 한다. |
| 임재(臨在) |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와 계심. 언약궤는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백성 가운데 계심을 보여 주는 표였다. |
| 지성소(至聖所) | 성막과 성전의 가장 안쪽 방. 대제사장만 일 년에 한 번 속죄일에 들어갈 수 있었다(레 16장). |
| 속죄소·시은좌 | 언약궤의 뚜껑.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그 위에 피를 뿌렸다. 은혜를 베푸시는 자리라는 뜻에서 시은좌(施恩座)라고도 한다. |
| 그룹 | 하나님의 보좌 곁에서 섬기는 천사적 존재. 속죄소 위에 금으로 만든 두 형상이 있었다. |
| 거룩 | 구별됨. 하나님은 피조물과 구별되는 분이시므로 사람이 자기 방식대로 가까이 갈 수 없고, 하나님이 정하신 길로만 나아갈 수 있다. |
| 경외(敬畏) | 공경하면서 두려워함. 마무리 기도의 "기쁨 가운데 두려움, 경외함 가운데 기쁨"과 통하는 말씀으로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시 2:11)가 있다. |
| 딜레마 | 어느 쪽을 택해도 곤란한 처지. 설교에서는 다윗의 좋은 마음을 아시면서도 하신 말씀을 스스로 어기실 수는 없는 하나님의 자리를 가리키는 말로 쓰셨다. |
| 소견에 좋은 대로 | 사사기의 표현. "사람마다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기 판단을 기준으로 삼는 것. |
| 인신 제사(人身祭祀) |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 가나안과 주변 민족의 풍습으로, 율법이 엄히 금했다. |
| 서원(誓願) | 하나님께 무엇을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 |
| 보혈(寶血)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귀한 피. 죄인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근거다(히 10:19). |
| 산 제물 | 설교의 "헌금은 나를 드리는 것"과 통하는 말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
8. 정리하며 확인할 점
- 영상 자동 자막의 인식 오류로 일부 표현과 고유명사, 함께 읽은 구절은 성경 본문(개역개정)에 맞추어 바로잡았습니다. 설교자의 표현과 미세하게 다를 수 있습니다.
- 2~4장과 6장(설교 흐름·결론·기도 제목·설교 내용 정리)은 설교에서 실제로 말씀하신 내용만 담았고, 7장 '참고자료'는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
- 설교 앞부분의 약 2분짜리 영어 영상 구간, 그리고 설교 뒤 회중 기도 직후 마무리 기도의 앞부분은 자막이 깨져 있어 뜻이 통하는 범위만 정리했습니다.
- 블레셋 땅에 궤가 머문 기간을 설교에서는 "6개월"이라고 하셨습니다. 성경 기록은 일곱 달입니다(삼상 6:1).
- 벧세메스에서 죽은 사람의 수는 설교에서 말씀하신 대로 70명으로 적었습니다. 개역개정 사무엘상 6:19는 "(오만) 칠십 명"으로 적고 있으며, 사본과 번역에 따라 숫자가 다릅니다. 본문은 그들이 궤를 "들여다본 까닭"이라고 적습니다.
- 언약궤가 "70년 정도" 방치되었다는 것은 설교에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사무엘상 7:2는 기럇여아림에 머문 기간을 20년으로 적는데, 이것을 사무엘의 미스바 집회 때까지로 보고 그 뒤 사울의 통치 기간 등을 더해 계산하는 방식에 따라 기간은 학자마다 다르게 봅니다.
- 다윗이 다시 궤를 옮겨 온 시점은 자막에 "○달 이후"로 숫자가 빠져 들려 "몇 달 뒤"로 적었습니다. 성경 기록은 석 달입니다(삼하 6:11).
- 입다의 서원에 대해 설교에서는 딸을 죽여 제물로 바친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전통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진 해석이며, 딸을 평생 처녀로 하나님께 구별해 드렸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성경 본문에서 입다가 서원한 말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삿 11:31).
- 주일 헌금을 하지 않는 이유로 드신 헌금 종류 가운데 십일조와 감사 헌금 다음 한 가지는 자막에 "사회 검"으로 들려 확정하지 못하고 "다른 헌금"으로 적었습니다. 헌금 액수를 말씀하시던 대목의 한 문장(자막 "헌금함을 … 챙길 때가 있는데")도 뜻이 분명하지 않아 "액수를 보는 것이 아니다"라는 요지만 옮겼습니다.
-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대답을 들려준 "어떤 목사님"의 이름은 설교에서 밝히지 않으셨습니다.